문재인 대통령의 에너지 정책은 기존 화석연료와 원자력 중심에서 벗어나 신재생과 천연가스를 중심으로 하는 안전하고 친환경적인 에너지로의 전환으로 정리할 수 있다. 원자력에 대해서는 탈원전 로드맵 마련과 안전 규제 강화, 신재생 관련해서는 2030년까지 발전량 비중을 20%로 올린다는 내용의 정책이 지난 해 말 발표된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반영됐다.

'경제급전에서 환경급전으로'의 전환이라는 정부의 새로운 전력정책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될 것이 있다.

안전이라는 가치 때문에 원전을 감축하고, 미세먼지와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석탄발전 감축을 현실화한다면 이로 인해 줄어드는 전력을 신재생으로 보충할 수 있는지가 첫 번째이다. 전력안보, 즉 전력공급의 안정성과 관련된 문제다.

신재생에 대한 정책적 의지가 아무리 강해도 부지문제, 주민수용성, 신재생 자체의 간헐성과 송배전망의 문제로 인해 정책목표 달성이 쉽지 않은 것도 현실이다. 신재생에 필요한 부지확보를 위해 농지를 활용한다는 것은 식량안보라는 또 다른 정책목표와 상충된다.

신재생 목표의 부담과 원전과 석탄발전 감축 상황에서 해법으로 등장할 수밖에 없는 연료가 천연가스다.

하지만 천연가스는 복잡한 공급구조와 시장형태를 가지고 있다. 원유시장과 달리 미국과 영국의 경쟁시장, 동북아시아 유가연동의 경직된 시장, 유렵 혼용시장 등 다양한 시장형태가 독립적으로 유지된다.

우리나라는 6% 정도에 이르는 자가소비용 직도입을 제외하고 한국가스공사가 사실상 독점적으로 천연가스를 수입·도매판매한다.

천연가스 발전량이 급증한다면 가스공사의 기존 도입물량 중 계약기간이 종료되는 물량과 새롭게 추가되는 물량을 합친 신규 수입물량에 대한 구매를 가스공사에게 맡길 것인지, 아니면 한전의 발전자회사나 민간발전사에게 맡길 것인지에 대한 정책적 논의가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국내 천연가스 시장에 경쟁을 도입하면, 새로운 사업자가 등장하면서 효율적이고 저렴하게 가스를 수입할 것이다. 선물시장 등 다양한 산업이 발달한다. 소비자가 공급자를 선택함은 물론 낮아진 천연가스 요금의 혜택을 볼 수 있다는 것이 개방의 장점이다.

반대로 국내 천연가스 시장의 경쟁 허용은 국내 수입자 간의 과당경쟁으로 국제시장 판매자만 유리하다. 결국 천연가스 수입가격이 오르고 국민은 비싼 가스요금을 납부해야 한다는 반론이 제기됐다.

국제 천연가스 시장이 독과점적이면서 지역 간 차별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후자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하지만, 최근 미국 셰일가스, 카타르, 동아프리카 가스 개발 등 충분한 공급가능물량, 유럽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유가연동의 경직된 시장구조 개선 같은 새로운 상황을 고려한다면 국제 천연가스 시장의 변화가능성 또한 크다.

지금 단계에서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국민적 합의 도출과 제도적 준비다. 20년 가까운 천연가스 시장 구조개편에 대한 지루한 논의를 마무리 지어야 한다. 경쟁시장 구조로의 전환에 필요한 시설공동이용에 대한 제도, 시장 불공정 해소를 위한 기관 설립 등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새로운 수입계약을 체결한 후 금융 조달, 가스전 개발, 수송 건조까지는 3~5년이 소요된다.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고 제도를 구축하는데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천연가스 시장 구조 논의를 시작하는 방아쇠는 국내 전원 구성에서 천연가스 비중과 수입해야 하는 물량을 결정하는 것이다. 제13차 천연가스장기수급계획이 중요한 이유다. 국내 천연가스 시장 개편은 신고리 5·6호기보다 더 큰 사회적 쟁점이다.

류권홍 원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rkh26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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