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전력정책에 촉각 곤두

새 정부 출범 후 국가 전원믹스 방향을 두고 전력업계 고민이 커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직후 미세먼지 대책 카드로 노후석탄화력 조기폐기 계획을 발표하면서 큰 틀에서 변화가 예고됐기 때문이다. 전력업계는 6월 임시국회를 맞아 원전과 석탄 비중 축소 가능 여부를 놓고 정치권에 안테나를 세웠다. 업계는 전원믹스 재편이 가시화하면 발전원별 비율은 물론, 경제급전 원칙의 전력시장, 소비자의 전력사용 패턴까지 변할 것으로 예상했다.

◇원전과 석탄, 감축 적정 수준은

"원전과 석탄을 얼마나 줄일 수 있나."

최근 전력업계 관계자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다. 가장 난감한 질문이기도 하다. 현 에너지 시장에서 최대 관심사지만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답변은 "알 수 없다"뿐이다.

애초 국민 함의와 수용성에 방점을 찍어 온 전력정책에서 적정설비 비중과 전기요금을 산정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다. 전력 분야는 국가 사용량 증가와 산업·사회에서의 수요증가 등 변수가 많다. 국가 차원 허용과 국민이 수용할 수 있는 불편, 전기요금 한계치에 대한 명확한 기준 수치가 없다. 화석연료 감소 이슈를 언급할 때마다 거론되는 전기요금 인상 수준을 놓고 각 단체가 주장하는 바가 다른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달 문재인 정부가 발표한 노후석탄화력 10기 조기폐지는 현 국가전력수급 체계에서 어느 정도 수용 가능한 수준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30년 넘은 설비는 효율저하로 인한 유지보수 비용 증가 등 성능 측면에서도 폐지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다. 고효율 신규 발전소 건설이 이를 대체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현재 국가 전력계통에 포함된 발전설비 용량이 100GW를 넘기 때문에 노후석탄화력 10기 용량인 3.3GW 정도가 공급용량에서 빠진다 해도 수급에 별다른 영향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후속조치에 대해서는 해석이 엇갈린다. 전력수급 차원에선 지난해 여름 최대전력 사례를 들 수 있다. 지난해 8월 12일 기록한 최대전력은 8518만㎾였다. 이 때 공급 가능한 전력은 9240만㎾ 수준으로 예비력은 721만㎾였다. 전력수급 비상단계가 예비력 500만㎾ 이하부터 발동되는 점을 감안하면 발전소 추가 감축은 신중한 검토가 필요한 부분이다.

일각에서는 향후 예정된 신규 발전소가 공백을 메워줄 것으로 전망하지만 최근 늘어나는 신규발전소 반대여론과 미래 국가전력수요 불확실성이 변수다. 실제로 여름과 겨울철 최대전력 수요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올 여름에도 평년보다 높은 기온의 무더위가 예상된다. 산업 측면에서는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등 처리해야 할 정보 양이 많아지면서 전기 역할이 점점 커진다.

업계는 적정 발전소 규모를 정하기 위해서는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한 전기요금과 품질 수준 등 비계량지표의 기준점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높은 전기요금과 일시적 정전사태를 감수한다면 줄일 수 있는 발전소는 많다. 그렇지 않다면 보수적 감축계획이 나올 수밖에 없다.

◇신재생 중심 전원 '덕 커브' 대비해야

신재생에너지 확대에 적극 나섰던 미국 캘리포니아주 전력시장에서는 2015년부터 이상현상이 발생했다. 일반적으로 일일 전력수급은 늦은 아침과 초저녁 두 차례 수요상승 곡선을 그린다. 업계에서는 두 개의 상승 구간을 가지는 곡선 모양이 낙타의 등과 닮았다 해서 '카멜 커브(Camel Curve)'로 부른다. 반면 캘리포니아는 늦은 아침부터 수급곡선이 급락한 후 초저녁 상승곡선만 나타나는 오리 형태의 '덕 커브(Duck curve)'가 나타났다.

캘리포니아의 덕 커브 사례는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이 많아질 때 전체 전렵수급에 어떤 영향이 있는지를 보여준다. 태양의 고도가 높아지면서 태양광 발전소가 본격적으로 전력을 생산, 전력시장의 수요곡선이 떨어지는 현상이 발생했다.

신재생에너지 발전량 증가로 기존 화력발전 가동이 줄어드는 표면적 결과만 놓고 보면 좋다. 덕 커브는 현상이 심화될수록 전력계통 운영측면에서 몇 가지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 우선 신재생에너지 최대 단점인 발전출력 변동성이 커져 전체 계통운영의 정확성이 떨어진다. 계절 영향 때문에 항시 일정한 용량을 담보할 수 없다.

하루를 놓고 보면 낮 시간의 전력수요는 신재생으로 감당하더라도 저녁시간의 피크전력을 감당하기 위해 기존 발전소의 동원이 필요하다. 계절적으로는 여름에는 풍력, 겨울에는 태양광을 대신할 별도 발전원이 요구된다.

실제로 캘리포니아는 태양광 발전이 멈추는 일몰 후 급격히 상승하는 수요를 충당할 발전설비가 부족한 문제를 겪었다. 결국 신재생에너지가 많아지더라도 전력계통 안전성 측면에서는 기존 발전소의 뒷받침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도 다르지 않다. 신재생에너지 발전용량이 9GW에 달하지만 현재 전력거래소는 수력발전, 바이오매스, 석탄가스화복합화력(IGCC) 등을 제외하곤 신재생에너지를 전력계통 설비로 운영하지 않는다. 원전과 석탄화력, LNG 발전소는 각 설비 용량만큼을 약속된 시간에 발전할 수 있지만, 태양광과 풍력은 전력거래소 급전지시에 따른 발전이 불가능하다.

안정적인 전력계통 운영이 보장되려면 계획보다 더 많은 신재생 설비와 에너지저장장치(ESS)를 비롯해 기존 발전소의 운전 대기 등이 필요하다. 새정부는 원전 및 석탄화력 감축 대안으로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꾀하지만 그에 상응하는 기존 발전소 역할이 뒤따라야 한다.

전력업계 관계자는 "태양광과 풍력 등 급전지시 이행이 불가능한 전원이 늘어나면 전력계통 부담은 그만큼 커진다"면서 "신재생에너지를 계통운영에 포함시키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여유로운 예비율 산정과 기존발전소 운전 대기, 대규모 ESS 구축 등이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신재생, 국가 주력 전원 가능성은?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대통령 선거 공약집에서 2030년 전력 공급량 가운데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20%까지 올리겠다고 밝혔다. 이는 제4차 에너지기본계획 '2030년 9.7%(2035년 11%)'보다 두 배 이상 높은 파격에 가까운 목표다. 신재생에너지를 현재 액화천연가스(LNG) 발전 비중(22%)에 버금가는 국가 주력 전원으로 키우겠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어렵지만 가능한 목표'라고 평가했다. 우리나라 신재생에너지 잠재 발전량 측면에서 부족하지 않기 때문에 보급 속도를 높이는 정책만 수반된다면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은 '화석연료 대체에너지원의 환경·경제성 평가' 연구에서 우리나라 신재생에너지 잠재 발전량이 2015년 327.5TWh로 현재 전력 수요의 약 65% 수준이라고 밝혔다.

이상훈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장은 "안전과 환경을 중시한 전력 수급 계획을 수립하고 신재생에너지와 LNG를 확대하는 전원믹스를 구성한다면 2030년 신재생에너지 비중 20%를 달성할 수 있다"고 낙관했다.

신규 원자력발전소 건설 중단을 비롯해 2030년 기준 원전과 석탄화력 비중을 각각 20% 및 25%로 낮추고, LNG와 신재생에너지는 각각 30% 및 20%로 상향 조정하는 전원믹스를 구성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는 2030년 신재생에너지 전력량 비중 20%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2030년에 신재생에너지 설비 용량이 67GW에 달해야 한다고 예상했다. 그 가운데 태양광이 37GW, 풍력이 16GW로 확대돼야 한다.

지난 10여년 동안 설치된 태양광 설치 용량은 4.5GW다. 최근 연간 1GW 규모의 신규 태양광발전소가 들어서는 것을 감안하면 앞으로 2030년까지 매년 3GW 규모 태양광발전소와 1GW 규모 풍력발전소를 설치해야 한다. 전력 수요가 안정된 가운데 신재생에너지 보급이 현재보다 2~3배 빨라지면 달성 가능한 수준이다.

신재생에너지 발전량 증가에 따른 전력 계통 안정 대책과 조치를 사전에 준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일정 수준(전력수요 15~20% 수준)까지는 계통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고 평가했지만 전력망 안정 운영을 위해서는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발전 계통의 접속 인프라 구축과 전력 계통 안정화를 위한 백업시스템, 전력저장장치(ESS), 스마트제어와 수요 반응 등 전력 시스템 지능화 및 유연화도 요구된다.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는 신재생에너지 보급 확대 목표 달성을 위해 전기요금에 신재생에너지 부과금 항목을 신설하고, 소비자 수용성(지불용의액) 제고에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소비자에게 투명하고 정확하게 알리고 동의를 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재생에너지 보급 비용을 전기요금에 반영한다면 전기요금이 점차 상승되지만 큰 충격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문재인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보급 확대로 2030년까지 전기요금이 약 30% 인상될 것으로 내다봤다.

연구소는 신재생에너지 보급 목표 상향 조정에 맞춰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제도(RPS)의 연도별 목표를 높이고, 소규모 설비에 대해 발전차액지원제도(FIT)를 한시 병행할 것을 권했다.

◆이상적인 전원믹스, 또 다른 해법

현 상황에서 원전과 석탄화력 비중을 단기간에 줄이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까지 우리나라 전력 시장의 대원칙으로 작용해 온 경제 급전 우선순위부터 바꿔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발전설비 규모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연료원은 액화천연가스(LNG)다. LNG는 국가 전체 설비 용량에서 32.1%를 차지한다. 석탄은 29.9%, 원전은 21.1% 수준이다.

발전 비중은 석탄 39.5%, 원자력 30%, LNG 22.3%다. 발전소는 LNG가 가장 많지만 발전소 가동은 연료비가 저렴한 원전과 석탄이 많다.

국회는 이를 개선하기 위해 올해 전력 수급 우선순위에 경제성과 함께 안전·환경 비용을 추가하는 전기사업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아직 관련 비용을 적용할 기준이 없어 경제 급전 체계가 지속됐다.

LNG 발전 업계는 발전용 에너지 세제 개편을 우선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행 세제 체계에서 LNG는 우라늄, 석탄과 비교해서 많은 세금을 낸다. 석탄은 개별소비세가 ㎏당 30원이지만 LNG 세금은 60원이다. 여기에 수입부과금과 관세도 붙는다. 세제 부문에서 우라늄과 석탄, LNG 간 형평성만 맞춰도 LNG 발전의 가격경쟁력 상승을 유도할 수 있는 셈이다.

해외 협력을 통한 원전 및 석탄화력 설비 감축 가능성을 제기하는 시각도 있다. 한·중·일·러 4개국의 전력망을 연결하는 동북아 슈퍼그리드와 한·러 가스 배관 사업 등이 대표 사례다.

동북아 슈퍼그리드는 에너지 다소비 국가인 한·중·일 3국이 전력 계통의 안정성 차원에서 가능성을 논의한 사업이다. 러시아도 동참하면서 초대형 전력망 구축이 구상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에도 언급된 프로젝트다. 최근에는 러시아 사할린과 일본 홋카이도를 연결하는 에너지브리지 등 단위 사업이 가시화되고 있다.

한·러 가스 배관은 북한을 관통하는 가스 배관을 통해 러시아 천연가스를 바로 우리나라로 들여오는 계획이다. 참여정부 당시에 추진됐다가 북한과의 갈등으로 잠정 중단됐다.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재개 가능성이 언급된다.

해외 전력망 연결과 배관을 통한 가스 도입이 가능해지면 국가 전력 수급 부담은 그만큼 줄어든다. 지금까지는 자원 빈국 입장에서 필요한 모든 전력을 자체 충당해야만 했다. 앞으로는 유럽처럼 필요 시 타국의 전력을 구매해 쓸 수 있고, 반대로 유휴 발전소를 운영해서 남는 전력을 팔 수도 있다.
조정형 기자 jenie@green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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