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유가, 저환율(원화약세)에다 전력수급까지 여유를 보이면서 에너지 소비시장이 그 어느 때보다 평온하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에너지 생산자들은 낯선 환경에 그야말로 아등바등이다. 에너지 사이클에서 최종 생산품인 전력은 도매시장가격(SMP)이 계속 떨어지면서 그 여파가 에너지 공급 부문 전체에 미치고 있다. 한 에너지 전문가는 "지금 우리나라 에너지 시장은 소비자단을 제외하곤 석유, 가스, 전력 모든 분야가 아프다"고 진단했다. 업계는 전력도매시장 신저가 행진이 국가 에너지산업 전반에 투자 위축을 가져올 수 있다고 우려한다.

◇SMP, 어디까지 떨어지나
업계에선 계통한계가격이라 불리는 SMP는 쉽게 풀어 전력도매시장 거래가격을 말한다. 이 가격에 따라 발전사는 전력을 생산하고 한국전력은 이를 사들인다. 소비자가 한전으로부터 전기를 공급받고 그 대가로 지불하는 전기요금과는 다르지만, SMP에 따라 전기요금 향방이 크게 달라지며 에너지 공급 측과 수요 측의 접점 기준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수치다.

최근 SMP가 '날개 없는 추락'을 하고 있다. 2011년 9·15 순환정전 사태를 기점으로 급격히 올라 2012년 정점을 찍은 후 지금까지 계속 하락 곡선을 그리고 있다. 정부가 순환정전 대책으로 발전소를 확대해 전력공급이 늘어났고, 여기에 국제유가 하락까지 겹치면서 하락세를 부추기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올해 2월 기준 평균 SMP는 ㎾h당 121원이다. 직전 달인 1월 132원과 비교하면 11원, 전년 동기인 지난해 2월 153원과 비교하면 32원이나 떨어진 수치다.

500㎿ 발전소 기준 SMP 1원 하락은 시간당 50만원의 매출 감소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지난해 동기 대비 32원의 SMP 차이는 500㎿ 발전소가 같은 전력을 팔았어도 지난해보다 시간당 1600만원을 적게 버는 구조다. 발전업계가 현 SMP 가격을 폭락 수준으로 표현하는 이유다. 원 단위 차이지만 수백만㎾의 설비를 돌리는 발전사 입장에서는 1원이 수억원의 손실로 다가온다.

전력예비율 부족으로 SMP 고가행진을 이어가던 2011·2012년과 비교하면 그 격차는 더 커진다. 당시 SMP는 2011년 126원에서 불과 1년 만인 2012년에 161원을 찍으며 최고치를 경신했다. 민간 LNG 발전사업자 초과수익 논란이 불거진 것도 이때다. 전국에 있는 모든 발전소가 풀가동하고도 SMP는 연일 최고치를 찍으니, 사업자들 입장에선 몸은 힘들었어도 수익 걱정은 없었던 때다.

3년 만에 정반대 상황이 닥쳤다. 발전소는 남아돌고 SMP는 2011년 수준으로 역행했다. 업계가 진짜 우려하는 것은 저가 기조가 쉽사리 끝나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아직 공식발표는 안 됐지만 지난달 SMP 평균가격은 118원 수준으로 하락세를 이어갈 전망이다. 앞으로 3개월은 발전 업계 대표적인 비수기인 봄인데다, 국제유가도 반등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미 관심은 SMP 심리적 저지선인 100원이 언제 무너질지에 모였다.

전력업계 관계자는 "공급 초과수준 발전소 물량에 최근 저유가와 저환율까지 겹친 게 크게 작용했다"며 "유가 하락세가 계속 이어진다면 SMP 100원 선도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두 얼굴을 가진 SMP
소비자 입장에서 도매가격 하락은 분명 이점이다. 마찬가지로 전력시장에서 SMP 하락은 소매가격 인상 부담이 그만큼 줄어드는 효과를 발휘한다. 전력부족 문제로 절전과 전기요금 현실화를 외쳐오던 과거를 생각하면 SMP 하락으로 인한 편익도 무시할 수 없다. 덕분에 적자 경영을 하던 한국전력도 전기요금 인상과 SMP 하락이 겹치면서 경영상황이 정상궤도를 찾아가고 있다.

문제는 하락의 정도다. 지금 같은 SMP 하락은 적정선을 넘어섰다는 게 중론이다. 순환정전 이후 2012년에 비정상적으로 높은 SMP가 기록된 만큼 어느 정도 하락은 예상했지만, 그 낙폭이 예상범위를 벗어났다.

2001년 전력시장이 개설된 이후 SMP는 꾸준히 상승해 왔다. 물가상승률이 반영된 발전원가 상승에 따른 결과다. 2009년 한 차례 하락세를 탄 적이 있지만, 이는 2008년 유가와 환율 폭등으로 급상승했던 SMP가 정상수준을 회복한 것으로 전체적인 상승 추세에 영향을 미치진 않았다.

최근 SMP 하락은 일시적 현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추세적으로 이어질 공산이 큰 것으로 전망됐다. 유가하락이 어느 정도 영향을 준 측면이 있지만, 보다 근원적으로는 공급과잉이라는 시장자체 요인에서 시작됐다. SMP가 떨어져도 발전소가 가동한다면 일정 수익을 기대할 수 있지만 지금은 가격하락과 함께 발전소도 멈춰 섰다.

올해 2월 전력예비율은 11.6%로 원전 약 10기 분량 여유를 보였다. 겨울철 예비율이 10%를 넘는 기현상도 벌어졌다. 비슷한 SMP 수치를 보인 2012년 전력예비율은 6% 수준이었다. 3년 전과 비교할 때 SMP는 120원대로 비슷하지만, 지금은 높은 예비율로 가동지시를 받지 못해 개점휴업에 들어간 발전소들이 늘어났다.

결과적으로 발전사업 가치 하락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사업자 입장선 신규 발전사업에 투자하는 것보다 자본을 보유하는 편이 더 낫다는 판단을 하기 쉽다. 국가 차원에선 신규투자 위축과 저효율 발전설비 퇴출로 발전 공급능력 감소라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많은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학계 일각에선 최근 하락세를 전력시장과 제도를 건전하게 개혁하는 기회로 삼자는 희망론도 나온다. 그동안 정부가 소매 전기요금 인상에 부담을 느껴 반영하지 못했던 각종 인상요인을 SMP가 낮아진 지금 하나둘씩 단계적으로 적용하자는 접근이다.

현재 전력가격에 추가 반영돼야 할 인상요인들은 연료비 연동, 온실가스 감축, 지역 지원금 확대, 신재생에너지 투자, 각종 세금 추가 등 다양하다. 유가하락에도 가스요금과 달리 전기요금 하락이 쉽게 결정되지 않은 이유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단순 연료비 이외에 이러한 추가 항목을 SMP 정상화와 함께 도매가격 원가에 포함시키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내놓는다.

전력업계 관계자는 "유가와 SMP 장기 하락은 그동안 우리 에너지 업계가 겪어 보지 못한 경험"이라며 "이는 도매시장의 부담이기도 하지만 그동안 반영 못한 인상요인을 하나둘 없애 나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기도 하다"고 말했다.

조정형기자 jenie@green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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