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 1호기 착공과 함께 시작된 우리나라 원전 기술 자립의 길은 크게 4단계로 나뉘어 추진돼 왔다. 1단계는 기술도입기로 고리 1호기부터 영광 2호기까지 해당된다. 이 시기 우리나라는 일괄 발주와 분할 발주 방식의 원전 도입을 거쳐 원전 기반 기술을 다졌다.

1984년 정부는 원전 설계 및 제작을 자체적으로 하는 방안을 결정한다. 기술자립 2단계의 시작으로 영광 3·4호기 원전을 건설하면서 원천 기술사로부터 우리나라 관련 기관으로의 기술전수가 시작됐다. 그 결과, 영광 3·4호기의 경험을 바탕으로 최초의 한국 표준형 원전인 OPR1000이 우리 기술진의 설계와 제작으로 건설됐다. 이후 OPR1000의 반복 건설로 목표했던 자체 설계 능력 95%를 달성했다.

APR1400 개발이 계획된 시기는 1992년이다. 기술자립 3단계 일환으로 '차세대 원자로 기술개발 사업'을 통해 당시 최대 출력의 원전을 우리 기술로 개발하는 작업이 시작됐다. 이후 10년 노력 끝에 2002년 정부로부터 표준설계 인가를 획득함으로써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고, 현재 신고리 3·4호기에 APR1400 모델을 적용했다.

APR1400은 세계시장에 거론되고 있는 제3세대 원전이다. 1960년대부터 전력을 생산하기 시작한 1세대 원전, 1980년대 TMI 사고를 전후해 가동되기 시작한 2세대 원전을 거쳐 안전성과 경제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것이 3세대 원전이다.

대다수 3세대 원전은 4개의 증기발생기를 갖고 있지만 APR1400은 2개의 증기발생기로 구성돼 경제성이 우수하다. 연료를 냉각하는 냉각재가 모두 유출되는 최악의 가상 사고상황에서도 연료를 냉각하기 위한 별도 비상냉각계통을 갖추고 있다. APR1400에선 이 비상냉각계통의 물이 원자로용기에 직접 주입되는 방식이 적용됐다. 이에 비해 프랑스 EPR는 전통적 방식인 냉각 유로에 주입하고 있으며, 일본 APWR는 전통적 방식에서 약간 진화해 두 가지 방식을 혼합해 사용하고 있다.

주 제어실도 각종 첨단기술이 적용됐다. 발전소에서 올라오는 수많은 정보를 가공·처리해 원자로 조종사에게 꼭 필요한 정보를 최적의 상태로 제공해 실수를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또 조종사가 내린 판단을 주제어실 컴퓨터가 다시 한 번 판단해 서로 다르면 이를 조종사에게 알려주는 인공지능이 탑재돼 있다. 주제어실 설계는 원전에서 근무 중인 조종사들이 100차례 이상 시연함으로써 검증을 완료한 상태다.

조정형기자 jenie@green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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