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한 지 꼭 4년이 되는 날이다. 이 사고 이후 일본 원전이 주춤하는 사이, 한국은 글로벌 원전시장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UAE 수출 이후 2호 원전수출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한국형 원자로 APR1400 모델이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로부터 사전승인을 받아냈다. 원전 신뢰도와 수출 가능성을 동시에 높인 계기가 됐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잠시 침묵기를 보냈던 세계 원전시장에 조금씩 신규 발주 소식이 나오고 있다. 개발도상국 경제 성장과 이를 뒷받침할 동력으로 원전이 필수로 요구되면서, 중동을 중심으로 제2 원전 르네상스 서막이 올랐다. 지난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출 이후 제2 수출국을 뚫으려는 한국 원전 산업계도 중동을 정조준하고 있다. 지난주 박근혜 대통령이 중동 순방에서 공격적인 원전 세일을 벌인 것도 이 때문이다.

때마침 미국에서 UAE 수출 원전인 APR1400 모델이 NRC(원자력규제위원회) 설계인증 사전심사 통과 소식이 날아들었다. 코리안 원전 세일 전성기를 준비하는 우리나라 원전 산업계엔 '더할 나위 없는' 호재다. APR1400이 본심사를 통과하면 미국 현지에 건설할 수 있는 모델로 등극하는 것은 물론이고 세계 원전시장에서 안정성을 검증받는 셈이다. 수출 시장에서 다른 원전보다 기술과 안전성 부문에서 우수한 모델로 공인되는 것이다.

◇한국형 원전 격을 높이다
지난 5일 APR1400 모델이 사전심사를 통과한 NRC 설계인증은 원전 표준설계에 대해 안전성을 평가해 인증하는 관문이다. 한국수력원자력과 한국전력공사는 지난해 12월 23일 1만여 페이지에 달하는 인허가 문서와 수십 종의 기술문서 등을 NRC에 제출했으며, 이번 사전심사 통과로 곧바로 본심사에 착수했다.

NRC 인증 취득은 미국 내 어디에도 해당 원전 모델을 건설할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설계인증 취득 시 미국연방 규정에 법제화돼 15년간 유효하며, 원전 건설시 표준설계 인증 분야 심사를 면제받게 된다. 관련 심사가 면제되는 만큼 건설 및 운영 인허가 기관과 비용 절감도 가능하다. 1990년대 이후 미국 현지 전력사업자들이 건설한 원전 모두 NRC 인증을 취득했거나 추진 중인 노형이다.

특히 향후 10년에서 20년 사이 미국 내 운영허가 만료 원전이 집중돼 있어 NRC 인증 취득의 중요성은 더 커졌다. 이를 대체 할 30여기의 신규원전 역시 최신 안전요건을 만족하는 설계인증 취득 모델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온실가스 감축 일환으로 2030년대까지 현 원자력 비중을 유지할 전망이다.

NRC 인증 취득은 표면적으로 미국 내 원전 건설 자격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국제적 통용 인증으로서 가치가 더 크다. 미국이 원자력 종주국으로서 가진 공신력이 NRC 인증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원전 산업계에서 NRC 인증은 일종의 설계인증 표준처럼 여겨지고 있다. 특히 원전을 처음으로 도입하는 개발도상국으로서는 NRC 인증 취득 여부를 원전 안전성 평가의 주요 지표로 활용할 수 있다.

프랑스와 일본 등 주요 원전 선진국들이 해당 인증 통과에 매달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APR1400이 NRC 정식 인증을 취득하게 되면 국제 원전시장에서 한국 원전은 안전하다는 브랜드 포지셔닝이 가능해진다.

지금까지 NRC 인증을 취득한 원전은 세계적으로 5개에 불과하다. 그나마 2개는 인증기간이 만료됐고 하나는 재인증을 신청한 상태다. 프랑스와 일본도 본심사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APR1400이 인증을 통과하면 세계에서 손에 꼽는 안전성을 갖춘 원전이 되는 셈이다.

◇반면교사의 성공
NRC 인증 사전심사 통과가 처음부터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설계인증을 취득하기 위한 작업은 지난 2010년 시작됐다. 미국 최신 요건을 반영한 설계인증 신청문서를 작성해 2013년에 제출했지만, 신청요건이 강화되면서 일부 정보가 미흡하다는 이유로 보류됐다. 계측제어 등 일부 설계 분야의 정보제공과 상세내용이 부족하다는 지적이었다.

과거 기준이었으면 이미 2013년도에 사전심사를 통과했겠지만, 앞서 신청한 프랑스와 일본 원전의 본심사 장기화가 변수였다. 프랑스 아레바의 US-EPR와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의 US-APWR 원전 모델은 2007년 12월 인증신청을 했지만 지금까지 본심사를 진행 중이다.

결국 아레바는 미국 의회를 통해 본심사 연기를 문제 삼았고, NRC는 처리가 늦어지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사전심사 기준을 강화하기로 했다. APR1400은 변경된 사전심사 기준을 통과한 첫 사례다. 이제 본심사에 돌입했지만 그 의미가 남다른 이유다.

강화된 사전심사 기준을 통과한 데는 프랑스 아레바 사례 연구가 큰 역할을 했다. 한수원은 아레바 US-EPR 원전이 본심사를 통과하지 못하는 이유를 파악하고 이를 보완한 내용을 사전심사에 반영했다. 특히 안전계통과 비안전계통의 정보공유 통신을 분리한 게 주효했다. 아레바 EPR 원전은 비안전계통과 안전계통이 서로 정보를 주고받는 통신 일부를 유지하고 있지만, APR1400은 안전기능을 위한 통신 이외에 모든 정보공유를 차단하면서 NRC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이번 사전심사 통과는 APR1400 표준설계가 충분한 완성도를 확보한 만큼 NRC가 표준 심사기간 내 안전성 평가를 완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본심사 단계에서는 설계 분야별로 안전성 평가를 위한 세부 기술내용 심사 및 검증이 진행되는데 필요한 NRC 표준 심사기간은 통상 42개월이다.

글렌 트레이시 NRC 신규원자로국장은 "APR1400 원전 설계인증 심사를 표준기간 내에 완료해 NRC 설계인증 심사의 모범사례로 만들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조정형기자 jenie@green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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