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싸움'이라는 속담이 있다. 단판에 결말을 내지 않고 옥신각신 승강이를 오래 끄는 양상을 말한다. 임진왜란 때 밀양에서 벌어진 싸움이 오래 걸렸다고 해서 유래됐다는 말이 일반적이다.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다른 해석도 있다. 밀양지역 주민들이 고려조를 통해 노예해방운동, 항몽운동 등 각종 민란에 적극 동참한 데 기인했다는 추론이다. 밀양에서 방보, 계년 등이 중심이 돼 신분해방운동을 펼친 사례가 대표적이다.

노예해방운동과 항몽운동을 펼쳤던 밀양지역 주민들의 기질과 기개를 대변하는 말로도 풀이된다는 설명이다. 밀양은 지조 있는 고장으로도 이름나 있다.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킨 사명대사의 표충사가 밀양에 자리하고 있다. 성리학자 김종직 선생 고향도 밀양이다. 밀양이 '선비의 고장'으로 불리는 이유다.

지금 밀양에서는 또 다른 싸움이 진행 중이다. 765KV 송전탑 갈등이 그것이다. 무려 8년 동안 진행됐다. 삶의 터전을 지키려는 공사 지역 주민들이 정부와 한전의 공사에 저항하고 있다. 한 때 정치권이 나섰지만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데 실패했다.

그 사이 국민들은 여름철 전력 대란을 겪었다. 다가오는 겨울도 전력이 걱정된다. 밀양 송전탑은 신고리원전에서 만든 전기를 옮기기 위한 통로다. 공사가 지연되면서 당장 올 겨울과 내년 여름 전력수급이 걱정되는 형국이다.

긴 갈등의 가운데는 빗나간 소통이 자리하고 있다. 찬반 주장을 표시한 밀양의 현수막 전쟁이 이를 대변한다. 공사재개도 임박했다는 게 현지 분위기다.

국가 차원에서 송전탑 건설은 필요하다. 당국은 공사에 앞서 주민들에게 정확한 사정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한다. 혼란을 부추기는 외부 목소리도 자제할 때다. 지금의 밀양싸움이 끝이 안 보이는 지루한 싸움이 아니라 명분과 지조 있는 투쟁으로 매듭지어지기를 기대한다.

윤대원기자 yun1972@green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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