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 11월 8일. 멕시코 멕시코시티에서 낭보가 전해졌다. 대구시가 에너지 올림픽으로 일컫는 '세계에너지총회(WEC)'를 유치했다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당시 우리나라는 미국발 금융위기로 환율이 1400원대를 넘으면서 '환율 적벽대전'을 앞뒀다. 남동풍을 불게 한 제갈량의 신통력이 절실했다. 달러 실탄 없는 중소기업은 키코(KIKO) 탓에 곡소리가 끊임없었다. 이런 와중에 들려온 WEC 유치 소식은 경제난의 슬픔은 빼고 기쁨을 더하는 상승작용의 힘이 됐다. 정부와 관계자 등은 올해 초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유치해 흘린 '더반의 눈물' 그 이상의 환희와 감동으로 서로를 끌어안았다. 다시 한 번 해보자며 파이팅도 외쳤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의 감격을 찾아볼 수가 없다. "정권이 바뀌면 어디로 갈지 모르는데 지금 무엇을 결정할 수 있겠습니까. 선거(대선) 이후 다음 정부에서 진행하면 되겠지요." 최근 만난 한 정부 고위 관계자의 말이다. WEC는 내년 10월 13일부터 닷새간 대구에서 열린다. 결코 시간이 많지 않다. 어젠다를 설정했지만 '미스터 빅샷(거물)'과 글로벌 에너지기업이 없으면 행사의 주목도를 높일 수 없다. 이들을 초청하는 데 최소 1년여의 시간이 필요하기에 정부 관계자의 말은 더욱 유감이다.

대구 WEC조직위원회는 2대 위원장으로 김중겸 한국전력 사장을 선출했다. 93개 회원국 주요 인사 초청과 스폰서 확보, 전시회 참여 유도 임무를 맡겼다. 그런데 국내 전력 현안이 급박하게 돌아가면서 이 또한 쉽지 않아 보인다. 하계피크 전력수급 대책과 한전 재무구조 개선 등에 김 사장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정부와 핵심 관계자들의 측면 지원이 필요한 때다.

고민하고 준비하는 조직에는 쇼크가 아닌 기회가 찾아온다. 우리는 이를 지난해 충분히 경험했다. 삼성전자는 애플 아이폰 쇼크로 한때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와신상담해 갤럭시S 시리즈로 지금은 한숨을 돌렸지만 초기 대응 미흡은 굴욕이라는 쓴잔을 들게 했다. 지난해 9·15 정전사태도 같은 맥락이다. 사전에 수요예측시스템을 개선했다면 가슴을 쓸어내리는 사태는 없었을 것이다.

WEC는 93개국에서 5000여명이 참가해 학술회의, 기술전시회 등을 갖는 울림이 큰 행사다. 특히 이명박정부가 천명한 녹색성장의 틀에서 에너지외교를 강화할 수 있다. 산유국 업계 최고위급 인사들과 접촉할 수 있어 오일머니(석유자본) 확보 기회도 가질 수 있다. 지역경제 활성화는 덤이다. 전문가들은 직간접 경제효과가 1조원을 넘을 것으로 추산한다. 정확히 17개월 남았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서둘러야 한다. 총회 유치를 위해 밤낮없이 같이 뛴 수많은 사람들의 땀과 노고를 잊어서는 안 된다.

김동석 그린데일리 부장 dskim@green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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