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정유사가 지난 분기에 이어 올 1분기까지 2분기 연속 적자 위기에 처했다. 올해 들어 국제유가가 배럴당 60달러 수준으로 소폭 올라 재고평가손실이 줄겠지만, 정유사 수익 근원인 '정제마진'이 최근 10년 새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현대오일뱅크 대산공장 야경
현대오일뱅크 대산공장 야경

10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싱가포르 복합 정제마진은 최근 배럴당 1달러대를 기록했다. 정제마진이 1달러 대로 하락한 건 2009년 12월 이후 10년 만이다. 1월 첫 주 3.1달러였던 정제마진은 1월 4주 1.7달러, 1월 5주 1.9달러로 내렸다. 1월 평균 정제마진은 2.5달러다. 이는 국내 정유사가 연간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던 2014년 4~5달러의 절반 수준이다.

정제마진은 휘발유·경유 등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유가격과 정제비용 등을 제한 것이다. 국내 정유사 손익분기점은 정제마진 기준으로 배럴당 4~5달러 수준이다. 정제마진이 이보다 낮아지면 석유제품을 판매할수록 손해다.

정유사는 지난해 4분기 국제유가 급락에 따른 대규모 재고평가손실로 1조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입었다. 지난해 하반기 국제유가가 배럴당 80달러대에서 40달러대로 반토막 나면서 재고평가손실이 늘었기 때문이다. 6~7달러대였던 정제마진도 5달러대 이하로 급락했다.

정유사는 통상 2~3개월 전 구매한 원유를 가공해 판매하기 때문에 국제유가가 하락하면 미리 사둔 원유가치가 떨어져 손해를 본다. 비싸게 사서 싸게 파는 구조가 되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국제유가가 배럴당 60달러대로 안정됨에 따라 정유사는 지난해 4분기와 반대로 재고평가손실이 아닌 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재고평가보다 더 중요한 정제마진이 말썽이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재고평가손실이 줄거나 이익이 생기면 실적 악화가 가중되지 않을 뿐 정제마진 하락에 따른 근본적 손실을 상쇄하거나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정유사의 수익 근원은 정제마진”이라고 말했다.

가장 심각한 것은 휘발유 마진이다. 계절적으로 비수기인데다 미중 무역전쟁 등 여파로 휘발유 수요가 줄었다. 중동산 원유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미국산 셰일오일 공급과잉으로 미국 정유사가 원유를 싸게 사 휘발유 생산을 늘리고 있다. 글로벌 기준 수요는 줄었는데 공급이 늘어 재고가 쌓이고 있다. 이 때문에 휘발유 마진은 각 지역에서 0달러대 또는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등 심각한 수준이다.

한국석유공사 석유정보사이트 페트로넷에 따르면 최근 국제 휘발유 가격은 배럴당 61달러다. 휘발유 원료인 원유가격이 두바이유 기준으로 62달러인 것을 감안하면 정제마진은 고사하고 원가보다도 낮은 상황이다. 중동산 원유 비중이 높은(약 70%) 국내 정유사로선 손실을 피할 수 없다.

문제는 단기간(1분기 내)에 정제마진 회복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이다. 미국 정유사 가동률이 연초 98%에서 90%로 소폭 줄었지만 여전히 높다. 미 정유사는 원유 수송 인프라 확충과 셰일오일 생산량 증가에 맞춰 높은 가동률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OPEC 원유 감산 합의 같은 특별한 이벤트가 발생하지 않는 한 당분간 정제마진 회복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현재 수준의 정제마진이 몇 주만 더 이어져도 지난 분기에 이어 이번 분기도 적자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함봉균 산업정책부(세종) 기자 hbkone@green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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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증권업계 취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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