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년 8월 19일 0시를 기해 우리나라 1호 원자력 발전소로서 40년 동안 산업 발전 견인차 역할을 해 온 고리 원전 1호기가 영구 정지됐다. 같은 날 오전 고리 1호기 퇴역식에는 취임 후 첫 외부 행보로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 '탈 원전' 정책을 공식화했다. 우리나라 에너지 정책의 일대 전환이 고리 1호기 영구 정지와 함께 시작된 셈이다. 그 후 1년이 지난 국내 원자력 산업계는 수출 신시장 개척과 원전 해체 산업 육성이라는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퇴역 1년을 맞은 고리 1호기에는 원자력 산업계의 고민만큼 묵직한 정적만이 흐르고 있었다.

1년 만에 다시 찾은 고리 1호기는 전과 다름없는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40년 동안 전력을 생산해 온 설비가 1년 만에 달라지기는 어려운 일이다. 유일한 차이점은 '고요함'이다. 연료봉이 모두 제거된 고리 1호기에는 더 이상 “웅~웅”하는 설비 가동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깔끔하게 관리되고 있는 각종 설비와 튜브들은 연료봉만 장전되면 당장이라도 재가동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1년 동안 정지된 발전소라는 사실이 현실감 없게 느껴졌다. 터빈실 한복판에 설치된 안내판만이 고리 1호기가 더 이상 현역이 아님을 알렸다.

연료봉이 제거된 고리 1호기 주제어실 경고등에 불이 들어와 있다.
연료봉이 제거된 고리 1호기 주제어실 경고등에 불이 들어와 있다.

더 이상 전력을 생산하지는 않지만 주 제어실에는 아직도 운전자들이 정상 근무를 하고 있다. 1년 전 원자로에서 빼낸 사용후핵연료가 저장된 수조와 설비 내 방사선 관리를 위해 냉각·공조 계통을 계속 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주 제어실 상단을 가득 채운 경고등 여기저기에 불이 들어와 있었다. 연료봉이 없어 전력 생산을 하지 못하다 보니 설비에 이상이 있다는 표시다. 정상 온도 이하로 내려간 원자로 경고등은 붉은 빛을 발하고 있었다.

고리 1호기가 영구 정지된 지 1년. 우리 원전 산업계에도 우려의 경고등이 켜졌다. 공론화를 거쳐 신고리 5·6호기 건설이 재개되면서 당장의 위기는 넘겼지만 신한울 3·4호기와 천지 1·2호기 등 신규 원전 계획 취소는 아쉬움을 남긴다. 정부는 수출 시장 개척을 통해 산업 생태계를 이어 나간다는 전략을 세웠다. 그러나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프로젝트가 하나 둘 완료되면서 새로운 프로젝트 수주가 시급한 실정이다.

사우디 등 후속 수출 사업 성사와 고리 1호기 해체 작업 개시까지 관련 산업 육성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정부도 현재 가동되고 있는 원전의 안전 운전 확보 차원에서 수출 등을 통한 원전 산업 생태계 유지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체코, 슬로바키아, 폴란드, 필리핀 등을 상대로 독자 수출을 추진하고 있다.

고리 1호기 주 제어실 한쪽 벽면에는 설비 해체 작업 일정과 기간 등을 표시해 둔 타임 테이블이 걸려 있다. 고리 1호기의 본격 해체 작업은 관련 승인이 통과된 이후인 2022년에야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때까지는 원전 해제를 통한 산업 유발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업계가 수주 공백 사태를 우려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앞으로 약 5년 동안 우리 원전 산업에도 지금의 기술력과 생태계를 유지하기 위한 타임 테이블이 필요하다.

[해체 실증 돌입한 고리 1호기, 조기폐쇄 결정된 월성 1호기]

영구정지 1년이 지난 고리 1호기는 마지막 임무인 완전 해체 작업을 시작했다. 국내 두 번째 수명연장 원전이었던 월성 1호기도 15일 조기폐쇄가 최종 결정됐다. 국내 원전 산업에 폐쇄와 해체라는 새로운 분야 산업 육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부는 고리 1호기 설비 해체 작업을 통해 관련 기술과 경험을 쌓고 이를 트랙레코드로 삼아 해외 원전 해체 시장에 진출한다는 계획이다. 국가 차원에서도 원전 건설과 운영에 이어 해체까지 전주기 산업 기술을 국산화한다는 의미가 있다.

해체 완료까지는 13년, 부지 복원까지 합치면 15년이 걸리는 대규모 작업이다. 사용후핵연료를 냉각 및 반출에만 8년 6개월이 걸린다. 그 사이 한수원은 원자력안전위원회에 해체계획서를 제출하고 2022년까지 인허가를 완료한다. 이후 시설물 본격철거 작업을 시작, 2030년 설비 해체를 완료한다. 이 과정에서 원자로 절단·제염 등에 필요한 기술이 국산화될 예정이다. 원전해체에 필요한 58개 기술 가운데 확보하지 못한 17개 기술은 해체 작업 착수 이전에 개발을 완료하고, 개발이 필요한 핵심장비 11개는 공정에 따른 필요시점에 맞춰 순차 개발한다.

월성 1호기는 15일 조기폐쇄가 최종 결정됐다. 이날 한수원 이사회는 월성1호기 조기폐쇄와 천지·대진 원전 사업 종결을 결정했다. 월성 1호기 조기폐쇄 방침은 지난해 10월과 12월 에너지전환 로드맵과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정해졌다.

월성 1호기는 후쿠시마 사고 및 경주 지진에 따른 강화된 규제환경과 최근의 낮은 운영 실적 등을 감안해 조기폐쇄가 결정됐다. 원전 관련 안전규제 사안이 많아졌고, 정지기간도 길어지면서 당초 수명연장 결정 당시보다 경제성이 떨어졌다는 평가다.

한수원은 후속 작업으로 월성 1호기 운영변경허가를 원안위에 신청한다. 약 2년 간 고리 1호기와 같은 수순을 밟는다. 운영변경이 승인되면 영구정지되고, 이후 해체작업에 들어간다.

천지 원전과 대진 원전 사업도 취소됐다. 한수원은 신규원전 사업의 원만한 종결을 위해 전원개발예정구역지정고시 해제를 정부에 신청할 계획이다.

부지 매입이 약 19% 완료된 천지원전(영덕)은 지정고시 해제 후 환매 또는 공매 등의 방법으로 토지매각을 추진한다. 월성 1호기 조기폐쇄와 신규원전 계획 취소에 따른 지출비용 보전 관련 사항은 향후 정부와 협의해 추진할 방침이다.

정재훈 한수원 사장은 “월성 1호기는 안전과 경제성 차원, 천지·대진 원전은 경영상 불확실성을 빨리 없애기 위해 종결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기장(부산)=

조정형 산업정책부(세종) 기자 jenie@green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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