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인천 중구 항동 하버파크호텔이 북새통을 이뤘다.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협력사 채용행사에 무려 5000여명이 몰렸다. 밀려드는 지원자 행렬에 행사에 참가한 구인업체 관계자는 대기표를 나눠줘야 했다. 행사에 참가한 18개 협력사는 1600여명을 채용하기로 했다. 주로 경비, 공항시설관리, 환경미화, 기내식탑재, 주차계도 등을 담당하는 비정규직 자리다. 모두 구인난에 시달릴 정도로 사람 구하기 어려운 직무였지만 최근 상황이 바뀌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후 첫 방문지로 인천공항공사를 택하고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선언하면서 정규직의 꿈을 안은 지원자가 몰린 것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한국경영자총연합회(경총)를 향해 "사회적 양극화를 만든 주요 당사자로서 책임감을 느끼고 진지한 성찰과 반성이 먼저 있어야 한다"고 경고했다.

관료사회와 대기업은 섬뜩했을 것이다. 이제 정부부처의 실무자는 대통령의 의지에 맞춰 정규직화 작업을 밀어 붙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문 대통령이 일자리정책의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을 두고 누구도 비난할 수 없다. 다만 정부가 가격책정이나 공급의 영역에 개입하는 순간 시장질서는 흐트러질 수 있다는 우려도 받아들여야 한다.

사전 정지작업 없이 정부가 깊숙이 개입하면 실패 확률도 그만큼 높아진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몰고 올 사회양극화, 차별, 안정성 등을 고려할 때 비정규직 문제를 해소하는 것은 맞지만 모든 일자리 문제를 한쪽 방향으로 바라본 것 아니냐는 우려도 따른다.

20세기에는 정규직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았다. 21세기 4차 산업혁명에서는 단순한 일은 기계가 한다. 따라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급한 것이 아니라 어떤 일자리가 줄고 늘어나는지를 먼저 검토해야 된다.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고 해법을 찾는 절차 없이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 정책을 일방적으로 밀어 붙이면 사용자의 불만도 커진다. 정부가 사회적 합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정책을 일방적으로 추진하면 일자리축소, 임금하락 등 의도치 않은 부작용뿐만 아니라 여러 주체 간 큰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

노조갈등이 심화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이런 우려도 현실화되고 있다. 기아차 노조는 지난 4월 조합원 투표에서 찬성률 71.2%로 비정규직을 노조에서 배제했다. 정규직 전환 규모를 둘러싼 양측 갈등이 이런 결과를 촉발했다. 기아차 노조가 비정규직의 조합원 자격을 박탈한 것은 정규직의 고임금과 고용 안정성을 지키기 위한 전략적 포석이기도 하다.

정부가 주인인 공기업의 경우 비정규직 문제를 더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우리나라 공기업 중 3분의 2가 적자다. 정규직 전환에 따른 인건비 상승을 감당 할 수 없는 공기업은 정규직 전환에 필요한 재원 확보가 쉽지 않아 재무 악화가 걱정된다. 대부분 적자 공기업은 경기 악화 탓에 경영여건이 여의치 않다. 따라서 개별 공기업의 경영상황에 대한 세밀한 분석 없이 일괄적으로 정규직 전환이 추진된다면 부작용을 피할 수 없다.

비정규직은 기업형편에 따라 유연하게 고용한다. 그런데 정부가 덜컥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선언하고 실적위주의 속도전에 나선다면 노사갈등과 산업현장의 혼란을 맞을 수밖에 없다.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고용문제는 고용주체인 기업의 의견이 반영돼야만 성과를 거둔다. 비정규직 문제로 우리경제의 양대 주체인 정부와 기업이 불필요한 갈등을 빚는 상황은 바람직하지 않다. 모처럼 회복 조짐을 보이는 지금의 경제를 살리려면 정부와 재계가 머리를 맞대고 지속 가능한 해법을 찾아야 한다.

강천구 영앤진회계 부회장 kkgg10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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