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9단과 알파고, 인간대 컴퓨터의 바둑 대결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 패러다임 전환성 이벤트는 단지 컴퓨터 성능의 눈부신 발전을 보여 줬을 뿐만 아니라 산업 분야에서 컴퓨터가 인간의 근본 역할도 대체할 수 있음을 보여 준 예가 된다.

석유 개발 현장은 지금도 지구상에서 돈이 가장 많이 움직이고, 인류 역사상 많은 전쟁을 초래한 곳이기도 하다. 석유자원의 확보는 곧 그 나라의 힘이 되고 국부의 상징이 됐다. 이에 따라서 각 나라는 할 수 있는 모든 기술을 석유 개발에 총동원해 왔다. 정보통신기술(ICT)도 예외가 아니다. 요즘 흔히 병원에서 활용하는 컴퓨터단층촬영(CT) 기기나 슈퍼컴퓨팅도 모두 석유 개발 기술에서 파생되고 발전을 거듭해 왔다.

ICT와 석유산업의 결합은 지금도 가속되고 있다. 최근 산업용 사물인터넷(IIoT), 빅데이터, 머신러닝 등 각종 첨단 ICT가 속속 석유개발 산업으로 들어와 활용되고 있다. 이러한 첨단 ICT를 활용한 유전 개발 기술을 `디지털 오일필드`라고 한다. 요즘 가장 뜨거운 이슈다.

2014년 이후 급락한 유가로 인해 석유개발회사는 종래의 생존 방식인 감원이나 비용 절감에 더해 관리와 생산 효율을 높이기 위해 디지털 오일필드 기술을 더욱 빠르게 도입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 규모는 벌써 30조원을 넘어섰다. 핼리버턴이나 슐럼버제이 같은 글로벌 자원개발서비스 회사가 빅플레이어로 활동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휼렛팩커드, 시스코, 화웨이 등 글로벌 정보통신 기업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정보통신 기업이 하드웨어(HW)나 소프트웨어(SW) 분야에서 공히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만 중국의 약진과 미국, 일본의 위세에 눌려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고 답보 상태에서 새로운 성장 모멘텀을 마련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들 기업을 디지털 오일필드 시장으로 진출하도록 유도한다면 이들에게 새로운 일감이 될 뿐만 아니라 유망 유·가스전 확보의 또 다른 기회가 될 수 있다.

ICT 기업으로선 석유 개발에 이해와 경험이 전혀 없기 때문에 신산업 진출을 위해서는 기존의 유전개발 공기업과 자원개발 서비스기업이 안내자 역할을 잘해 줘야 한다. 특히 지난 정권 때 투자 실기로 여론의 뭇매를 맞은 공기업은 새로운 공익 역할을 정립하고 융합 석유신산업 창출로 이미지를 쇄신할 수 있다.

캐나다나 미국의 유전 현장은 여전히 글로벌 경쟁이 뜨거운 전쟁터나 다름없다. 한국 기업이 진출하려 하더라도 디지털 오일필드 시장에서 메이저 자원개발서비스 기업과 대등한 경쟁을 펼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규모나 특성에 따라 덩치 큰 서비스기업이 공략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틈새(Niche) 유전개발 현장도 세계 곳곳에 넘친다. 바로 이런 유전 개발 현장에 적합한 맞춤형 디지털 오일필드 솔루션과 제품을 한국이 개발하고 진출한다면 분명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한다.

구글의 알파고를 보며 이미 한국은 늦었다고 탄식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석유 개발의 알파고는 자원 개발 기업과 정보통신 기업이 긴밀하게 뭉쳐서 연구에 매진한다면 늦지 않았다. 특정 영역에서는 세계 시장을 주도할 수도 있다. 더 늦기 전에 알파고처럼 의사결정에 순발력을 발휘해야 한다.

박희원 에너지홀딩스 대표 phw00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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