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비전만 화려하지 않기를

산업부가 지난 26일 전력 빅데이터 개방 방침을 내놓았다. 그동안 한국전력이 소유했던 가정 등 수용가 전기 사용 정보를 신사업 활성화 차원에서 개방하기로 한 것이다. 전국 집단 원격검침인프라(AMI) 데이터에 통신업체, 구역전기사업자 등 민간 접근과 사업참여가 한층 수월해졌다. 최근 TV광고에 나오는 것처럼 내 집 가전이나 전기 소비기기를 마음껏 제어할 수 있고, 가까운 시일 내 내가 아낀 전기를 시골 부모님 댁에 보낼 수 있는 서비스도 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전기사용량 패턴을 분석해 독거노인을 보호하거나 전기 무단사용 방지 등 사회안전망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단순하게 검침이나 전력 수요관리 역할로만 여겼던 AMI 활용가치도 크게 향상될 것이다. 업계는 정부가 지난 2010년 스마트그리드 국가 로드맵을 발표할 때 이 같은 내용까지 염두에 뒀다면 스마트그리드 시장이 지금처럼 위축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토로한다. 늦었지만 이번 정책을 반기는 눈치다.

걱정도 따른다. 정부 방침은 큰 그림일 뿐 지금 당장 업계 코앞에 닥친 현안은 챙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활용 방안은 내놓았지만 정작 구축 계획은 내놓지 못했다. 지난해 이어 올해도 AMI 구축사업은 해를 넘길 위기에 놓였다. 업계는 또 한 해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데도 산업부는 사업 진행 여부에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 한전만 쳐다보며 사업을 기다렸던 업계는 다시 산업부를 쳐다본다. 한전은 산업부가 올해 사업 발목을 잡았다고 하고, 산업부는 한전 독점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한다. 신경전을 벌이는 사이 업계 시름은 깊어지고 있다. 지난 26일 콘퍼런스에서는 기업이 정부나 한전을 상대로 질의응답할 기회조차 없었다.

산업부가 발표한 AMI 데이터 개방은 우리나라 스마트그리드 시장 활성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이를 실행하고 손과 발이 돼줄 기업 속사정도 들여다봐야 할 것이다. 큰 그림도 중요하지만 AMI 구축사업 지연 등 당장의 난관을 푸는 것이 급하다.

박태준 기자 | gaius@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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