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 시행 예정인 온실가스배출권거래제를 사실상 연기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20일 정부 관계부처에 따르면 정홍원 국무총리와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배출권거래제 시행시기 재검토를 언급한 데 이어 박근혜 대통령까지 암묵적으로 여기에 무게를 실어주면서 내년 시행을 주장하는 환경부가 중과부적 상황에 직면했다.

청와대, 총리실, 기획재정부 모두 배출권거래제 시행시기 재검토에 무게를 두자 환경부는 전의를 상실한 모습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국무총리나 부총리의 배출권거래제 시행 시기 재검토 발언에 이은 후속 조치를 위한 부처별 논의 등 구체적인 지시는 아직 없다"며 "하지만 부총리가 계속해서 배출권거래제 재검토를 언급해 제도 연기 또는 산업계 부담 대폭 완화 둘 중에 하나로 변경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시행 시기를 연기하는 방식은 국회의원 입법을 통해 배출전망치 재산정 기간 필요를 근거로 담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결국 산업계가 요구한 대로 배출전망치도 재산정하고 시행 시기도 미루는 형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배출권 거래제 주무부처인 환경부가 이 같은 입장을 보이는 것은 직간접적인 압박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최근 열린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회의에서 내년 1월 시행 예정인 배출권거래제 시행시기와 관련해 "산업계 부담 등을 고려해 관계 부처 간 좀 더 논의하겠다"며 시행 시기 조정 의사를 밝혔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도 "국민경제에 부담을 줄 수 있는 만큼 균형 있게 정부 방침을 정해 추후 입법이 필요한 부분은 국회에 제안토록 하겠다"고 언급했다. 최 부총리는 또 부임 후 첫 현장시찰 자리에서 "법에는 내년 1월부터 시행하도록 돼 있지만 여러 문제가 노출되고 있기 때문에 점검해서 시행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추가로 말했다.

여기에 박근혜대통령까지 힘을 실어줬다. 바이오·기후변화를 주제로 열린 11차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 기후변화 기술·산업 발전에 밀접한 관계가 있는 배출권거래제에 대한 언급을 일체 삼가한 것이다. 배출권 거래제와 같은 강력한 온실가스 규제가 있어야 기후변화 기술개발과 관련 산업발전이 촉진된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기술개발만 독려했을 뿐 이슈인 배출권거래제는 언급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이 배출권거래제에 대한 침묵한 것은 국가경제 전반에 부담을 주는 이 제도 시행 연기에 무게를 둔 것으로 해석된다.

환경부 한 고위관계자는 "이미 법에 명기된 배출권거래제 시행을 연기하자는 것은 명백한 입법권에 대한 도전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으나 "현재로서는 새로운 국면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해 이미 무게추가 기울었음을 인정했다.

온실가스배출권거래제는 정부가 할당한 양보다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한 기업에 배출권을 사도록 하거나 과징금을 내도록 하는 제도다. 환경부는 오는 10월 기업별로 배출량 할당치를 주고 내년 1월부터 이 제도를 시행할 예정이지만, 재계는 "연간 수십조원을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며 시행 연기를 주장하고 있다.

함봉균기자 hbkone@green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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