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기상기구(WMO)는 국제연합(UN)이 운영하는 기상관측 전문 국제기구로 회원국가만 189개에 이른다.

WMO 정보·자료분배는 1962년 구축된 세계기상자료통신망(GTS)을 근간으로 이뤄지며 지금까지 성공적인 통신망으로 인정받아왔다. 하지만 시스템 노후화와 대용량 데이터 교환 불가 등의 문제가 불거지면서 세계기상통신망(WIS) 개발이 추진됐다. 우리나라가 이번에 WIS 체계에서 최상위 레벨인 전지구 정보시스템센터(GISC) 서울(이하 GISC)을 이번에 유치한 것은 그래서 의미가 크다

◇'기상정보 강국'으로 도약=기존 GTS는 체계적인 자료교환을 위해 세계기상센터→지역허브센터→국가센터로 이어지는 형태의 역할분담을 했다. 상위 레벨에 있을수록 많은 정보에 접근할 수 있고 정책결정에도 참여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가장 낮은 국가센터 레벨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자료를 받기 위해서는 중국·일본 등의 협조를 요청해야 했다.

WIS 체계는 전지구 정보시스템센터(GISC)→자료수집생산센터→국가센터로 이어지는 형태다. 이번 우리나라가 GISC를 유치한 것은 기존 GTS 체계에서보다 2단계 업그레이드된 것이다. GTS 체계에서 최상위 레벨인 세계기상센터 유치국이 다루던 수준의 정보를 우리나라가 확보할 수 있게 된 셈이다.

GISC 유치로 우리나라는 새로운 세계 기상자료 교환 패러다임인 전지구기후서비스체계(GFCS)에서 중심 역할을 수행하게 됐다. 고해상도 위성관측 자료 등 대용량 관측자료와 수치예측 모델 생산자료, 세계 기후변화 시나리오에 대한 수집·가공·처리·유통 등이 가능한 인프라를 구축·운영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관련 사업을 통해 개발한 기술은 민간에 이전해 기술경쟁력 강화와 기상산업 활성화에 기여할 전망이다. 보다 많은 정보를 확보할 수 있는 만큼 예보 정확도를 높여 연간 1080억원의 재해예방 효과가 기대된다.

◇유치 성공 비결은 'IT'=GISC 유치를 위한 노력은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상청은 당시부터 독일·프랑스·영국 등과 WIS 기술 개발을 추진했다.

오랜 기간 준비한 만큼 충분한 자격을 갖추고 있었지만 일본·중국의 견제로 우리나라는 유치 후보국에 이름을 올리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기상청은 선진화 된 기상기술과 정보통신 인프라를 장점으로 내세우며 유치 타당성·필요성을 설명했다. 기상청은 한 달 평균 1테라바이트(TB) 이상의 관측데이터를 생산·유통하고 있다. 순수 국내 기술로 종합기상정보시스템(COMIS)을 개발해 운영하고 있는 등 선진화된 IT 인프라를 갖췄다.

개도국을 대상으로 정보통신기술 교육 프로그램을 수행해 우리나라의 앞선 IT 인프라와 기술을 외국에 알리는 데 노력해왔다. 위성·슈퍼컴퓨터 등을 통해 IT 분야 기상 선진국이라는 이미지를 꾸준히 심어준 부분이 유효했다.

남재철 기상청 기상산업정보화국장은 "WMO는 GISC 운영국들에 책임영역 국가와 개도국에 대한 WIS 기술 지원을 권고하고 있으며 특히 우리나라에는 IT를 기반으로 WMO 전문가 활동을 확대해 줄 것을 요청했다"며 "GISC 서울 헬프데스크 운영과 공적개발원조(ODA) 등 개도국 기술지원 사업을 수행하는 한편 정기적으로 기술교육 워크숍을 개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소박스]2017년 가상시나리오-GISC가 바꿀 미래는
#2017년 9월 미국 항구도시 뉴올리언스로 향하던 A해운업체는 서울의 GISC로부터 실시간 기상통보를 받고 항로를 변경했다. 정박 예정 지역에 허리케인 발생이 예상된다고 알려왔기 때문이다. 대신 GISC가 추천해 준 인근 지역에 머물렀다가 3시간 후 다시 뉴올리언스로 향했다. 특정 지역과 시간에 따라 제공하는 맞춤형 기상정보 덕분에 A해운업체는 운영비를 매년 100억원 가량 비용을 절감하고 있다.

#자원개발업체에 근무하고 있는 박씨는 다음주 호주 출장이 예정돼 있다. 탐사를 위해 처음 방문하는 곳이어서 기상상태가 궁금했지만, 워낙 잘 알려지지 않은 지역이라 정보를 얻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GISC 웹포털 사이트에 접속했더니 기온·습도·예상강우량까지 모두 알 수 있었다. 메일 주소를 등록해 놓으니 원하는 시간마다 맞춤형 정보가 도착해 박씨는 마음 놓고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GISC 서울 유치는 우리나라가 글로벌 기상 시장에서 '기상주권'을 확보하는 첨병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기상정보는 산업경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수출국가인 우리나라에 있어 기상정보는 더욱 소중하다.

기상청 관계자는 "그동안 기상정보를 일본과 중국에서 제공받아왔지만 이번 GISC 유치로 독자적인 기상서비스가 가능해질 전망"이라며 "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장기적으로 수조원대의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향후 우리나라가 기상정보를 축적하게 되면 이를 활용한 다양한 사업을 통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IT를 활용해 기상정보를 재가공하고 개발도상국에게 시스템 전수 등 다양한 지원사업도 병행할 수 있다.

한 자동기상관측장비 업체 관계자는 "기상정보는 항공기·선박운항, 해양관광, 레저 등 다양한 산업과의 연계가 가능하다"며 "지역 특화형 기상 비즈니스도 창출할 수 있어 후방산업의 확대도 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오픈위스(OPENWIS)로 WIS 기술 표준 이끈다
기상청은 효율적인 WIS 운영과 기술표준 선점을 위해 영국·프랑스·호주와 함께 GISC 등 WIS의 다양한 센터 구축을 위한 소프트웨어인 '오픈위스(OPENWIS)'를 개발하고 있다. 총 100만유로가 투입되는 프로젝트로 우리나라 기상청과 프랑스 기상청, 프랑스 기상청 진흥원, 영국 기상청, 호주 기상청이 지난 2010년부터 개발에 착수했다.

오는 8월 사업이 마무리 될 예정으로 각 참여국은 향후 오픈위스가 세계 WIS 기술의 표준이 될 수 있도록 다른 나라로의 활용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이들은 WIS 기술 정의서를 기준으로 WIS의 센터 운영에 필요한 15가지 핵심요구사항을 개발 중이다. 핵심요구사항은 △데이터 업로드 △전 지구적으로 분산된 데이터 집중화 △사용자 식별 및 역할 정보관리 △사용자 인증 △전용 네트워크를 통한 파일 다운로드 등이다.

[인터뷰]남재철 기상청 기상산업정보화국장

"기상정보업무에 있어 우리나라가 독립선언을 한 것입니다"

남재철 기상청 기상산업정보화국장은 GISC 유치가 기상정보업무 수행에 있어 중국·일본 등 주변국에 대한 의존을 완전히 극복한 것이라고 말했다. 1956년 WMO에 가입한 후 세계기상정보는 일본·중국의 협조를 통해서만 받을 수 있었다. 이제는 우리나라도 동등한 자격과 권한을 갖춘 기상정보 강대국으로 도약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남 국장은 "우리나라는 기상업무에 대한 역사와 전통, 세계최고의 정보기술을 갖고 있음에도 그간 중국·일본 등 주변국으로부터 여전히 '독립선언'을 하지 못한 상황이었다"며 "우리 정보통신·기상기술의 우수성을 바탕으로 국제정치가 아닌 순수한 기술과 열정에 승부를 걸어 이번 유치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기상청은 GISC 유치를 통해 소비자에게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웹포털 서비스를 통해 세계 기상자료 검색과 다운로드가 가능하도록 한다는 목표다. 기존 국내 기상자료를 넘어 세계 자료를 제공해 다양한 나라에서 활동 중인 국민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

남 국장은 "GISC 구축 경험과 핵심기술을 바탕으로 세계기상정보센터 하부센터 구축을 지원하는 국내 기상사업자들은 해외시장 진출을 도모할 수 있고 글로벌 기상정보의 부가가치 창출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기상산업이 중요한 이유에 대해서는 국민 생명과 재산 보호는 물론, 기상정보 부가가치 창출로 일자리 창출, 소득증대 등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특히 우리나라가 강점을 갖고 있는 IT 기술을 적용해 첨단기상장비 원천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발판으로 시장 수요가 큰 기상장비를 국산화 해 수출산업화가 가능하다.

남 국장은 "기상정보와 IT 융합을 통해 기상업계의 새로운 사업영역 개척을 돕고 연구개발(R&D) 지원, 기술이전 등의 육성책도 강구할 것"이라며 "독자적인 기상장비와 기상기술·상품, 기상전문가를 앞세워 기상분야의 글로벌화를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유선일 기자 ysi@green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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