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스정룽 선텍파워홀딩스 회장 배우기 열풍이 분다고 한다. 호주에서 세계 최고의 태양전지 기술을 배운 후 중국으로 돌아와 벤처회사를 창립, 빚쟁이들에게 시달리던 시절을 견뎌내고 세계 1위 태양광 업체에 등극한 성공스토리가 그들에게 감동을 주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저탄소 녹색성장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시작된 지금, 뛰어난 녹색기술만 있으면 나도 스정룽 회장처럼 성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과 희망이 젊은 그들의 가슴을 뛰게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세계는 녹색 신대륙을 선점하기 위한 벤처기업들의 '녹색기술 대전'이 펼쳐지고 있다.

◇광활한 녹색 신대륙=녹색 산업의 가능성은 무한하다. 각국 정부와 기업들이 앞 다퉈 녹색 산업 투자를 늘리는 이유다. 태양광·풍력·바이오에너지만 놓고 봐도 2007년 758억달러였던 세계 시장규모가 2008년 1159억달러로 53%나 성장했다. 2018년에는 3151억달러로 성장해 10년 후면 지금보다 3배 이상 커질 전망이다.

이 처럼 성장속도가 빠른 녹색 시장을 차지하기 위한 무기가 바로 녹색기술이다. 녹색산업은 새로운 산업이기 때문에 신기술의 중요성이 커진다. 녹색성장위원회는 태양광·풍력·LED·2차전지·탄소포집저장(CCS) 등 27개 녹색 중점기술 세계 시장 규모가 2007년 1조5000억달러에서 연평균 10.2% 성장해 2020년이면 5조7000억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측했다. 특히 녹색기술이 만들어내는 신시장이 모산업(parent industry)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급격히 커지면서 고효율 저공해 차량의 자동차 산업 비중은 2007년 0.7%에 불과했지만 2020년에는 31.4%까지 높아질 전망이다. 2차전지도 자동차와 신재생에너지·모바일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07년 30.5%에서 2020년 63.0%로 두 배 이상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녹색기술 이끄는 벤처기업=기술력 하나로 녹색벤처 시대를 열어가는 기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지난 8월 미국 그린테크미디어는 기술력과 수익성 면에서 상장이 기대되는 회사 10곳의 리스트를 발표하면서 그 맨 윗자리에 '블룸에너지'를 올려놓았다. 블룸에너지는 그야말로 혜성처럼 나타난 녹색 벤처기업이다. 이 업체는 월마트와 페덱스·코카콜라·이베이·구글 등 글로벌 기업을 고객으로 뒀으며 2월 당시 끌어 모은 자금만 4억달러(약 4600억원)에 달했다.

미항공우주국(NASA) 연구원이었던 스리드하르 박사(블룸에너지 대표)가 개발한 연료전지 블룸박스는 모래를 원료로 만든 얇은 전지판에 특수잉크를 입혀 만들며 벽돌 하나 크기만으로 한 가정이 사용할 수 있는 전력을 생산해낸다. 만약 상장을 통해 기술력을 인정받게 된다면 에너지 업계에 혁명을 몰고 올 수도 있다.

국내에서는 지난 4월 시작된 녹색인증제도를 통해 뛰어난 기술을 가진 녹색 업체들이 경제적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고 있다. 녹색기술인증은 지금까지 78건이 인증확정을 받았으며 이 가운데 절반이 넘는 44건이 중견·벤처기업 기술이었다.

잉크테크(대표 정광춘)는 '롤투롤(Roll to Roll) 코팅 공정 기반 은 반사필름 제조 기술'로 인쇄 전자업계에서는 처음으로 녹색기술인증을 획득했다. 이 기술은 두루마리처럼 말린 필름에 특수잉크를 코팅하는 방법이며 여기에 사용하는 핵심소재가 바로 코팅잉크다. 잉크테크가 개발한 은 코팅잉크는 일반적인 온도와 압력 조건에서도 박막 필름을 제조할 수 있도록 해 제조단가를 획기적으로 낮추는데 기여했으며 코팅 방식을 사용하기 때문에 분사 방식과 달리 원재료 손실이 거의 없고 반사율이 98% 정도로 매우 높다. 게다가 코팅공정 중에 사용하는 오염물질을 전량 회수하고 에너지 및 자원을 절감한다는 점에서 환경 친화적이다.

에스에너지는 'G to G 실리콘 태양전지 모듈' 기술로 녹색기술인증을 받았다. 이 기술은 모듈에서 태양전지가 설치되지 않은 여백을 통해 태양에너지가 투과될 수 있도록 전후면 마감재를 유리로 대체하는 개념이다. 이 기술은 업계 최초로 한국건자재시험연구원으로부터 '건' 마크를 획득한 상태며 신재생에너지센터 인증까지 받아 상용화까지 이뤄냈다. 풍력업체 유니슨도 업계 최초로 '750㎾ 풍력발전시스템용 영구자석 동기발전기'로 녹색기술인증을 획득했다. 이 제품은 기어리스 방식으로 동력전달장치를 단순화해 유지보수가 쉽고 저렴하며 중소형 풍력발전단지에 특히 강점을 가지고 있어 향후 시장 점유율 향상이 기대된다.

◇남은 과제=그러나 녹색 신대륙을 선점하기 위한 기술적 과제도 만만치 않다. 우리나라의 녹색기술 수준은 최고기술 보유국을 100%로 볼 때 44%~65% 수준으로 매우 낮다. 녹색기술 국산화율 역시 최대 68% 정도여서 로열티 유출은 물론이고 기술 종속마저 우려되는 상황이다.

더욱이 미국·일본·유럽 등 선진국이 경쟁적으로 녹색기술 육성정책을 발표하면서 이들을 따라잡아야 하는 우리로서는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미국은 2006년 '첨단에너지 계획'을 발표해 녹색에너지 연구기반을 마련했고 오바마 대통령은 10년간 청정에너지 산업에 1500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일본은 쿨어스 에너지혁신기술계획을, 유럽연합은 에너지전략기술계획을 각각 2008년에 발표하는 등 녹색기술 발전을 위해 발 벗고 나서는 상황이다.

결국 핵심원천기술 확보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원천기술을 통해 실용화 기술을 확보할 수 있고, 국산화를 달성해 가격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밖에 이들 신기술을 검증해볼 수 있는 실증단지 구축 등도 녹색기술 개발에 중요한 인프라로 평가된다.

◇스마트 조명제어기기 '에너포스' 개발한 이상철 피엠디네트웍스 사장

"기술을 우대하는 그런 분위기가 만들어지면 좋겠습니다."

스마트 조명제어 전문업체 피엠디네트웍스의 이상철 사장은 벤처 활성화를 위한 첫 번째 요소로 '기술우대사회'를 꼽았다.

여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대우고등기술연구원 출신으로 베테랑 기술자였던 이 사장은 IT업체에서 근무한 경험과 전공인 전기공학 기술을 결합해 전력IT 제품을 만들기로 하고 2007년 연구개발에 돌입, 2년여만에 기술을 개발하고 2008년 피엠디네트웍스를 창업했다.

이렇게 탄생한 스마트 조명제어기기 '에너포스'의 기술적 성취도는 인상적이었다. 운동화 상자만한 크기의 기기를 기존 분전반에 연결하기만 하면 최대 250개의 형광등을 제어해 밝기를 조절할 수 있다. 형광등은 물론이고 백열등과 할로겐·고압·LED 램프 등 거의 모든 조명기기에 적용이 가능하다. 빌딩에 사용한다면 전기요금의 18%인 연간 71만원 정도를 절약할 수 있다. 한 대에 200만원 정도니 3년이면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셈이다. 수명은 반영구적이다. 가로등이나 터널에 사용하면 최대 36%의 에너지 절감률을 나타냈다.

특히 에너포스의 핵심기술인 교류(AC) 스위칭 기술(전력손실 없이 교류의 흐름을 제어하는 장치)은 세계에서 처음 개발된 기술로 국내 특허를 획득했으며 지난 4월 국제특허(PCT)도 출원했다. 이 대표는 "기술검사에 나선 산업기술시험원(KTL) 측에서 '이런 건 처음 봤다'는 반응을 보일 정도"였다며 "국제특허를 받는데는 2년 정도 걸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피엠디네트웍스는 이러한 기술력을 인정받아 지난 6월 그린IT 분야에서 최초로 지식경제부 녹색기술인증을 획득했다. 녹색기술인증은 녹색분야 투자 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녹색 우수기술임을 공식 인정해주는 제도로 지난 4월 시작해 지금까지 총 78건의 기술이 이 인증을 받았다. 이외에도 조달청 우수제품 지정, 발명진흥회 우수발명품 우선구매 추천, 산업기술시험원 K마크 획득 등 다양한 기관에서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기술력만 좋으면 될 줄 알았던 이 대표는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아무도 투자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녹색성장 분위기에 여기저기서 녹색펀드가 조성됐지만 벤처캐피털은 물론이고 공공금융기관조차 "매출 실적을 가져오라"며 문전박대를 했다. 기술개발비 8억원을 보태느라 셋방살이에 빚까지 진 이 사장은 "이럴거면 뭐하러 국가 예산을 들여 인증을 만들었냐"며 반문했다. 제품 판매를 위해 지방자치단체를 돌았지만 성능을 믿기 어렵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오히려 해외에서 먼저 성능을 인정해 이달 태국으로 50여개를 첫 수출하기로 했다. 그는 "도전정신을 갖고 뛰어드는 게 벤처인데 국내에서는 이런 의미가 퇴색한 것 같다"면서 "기술의 모험이 아니라 돈의 모험이 돼버린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말했다.

미국 실리콘밸리처럼 기술력만 좋으면 소위 '대박'이 날수 있는 분위기가 돼야 제2의 녹색벤처 열풍이 불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이 사장은 "아무리 힘들어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고 해서 별명이 '오뚝이'"라며 "스마트그리드 분야에서 조명제어 토털 솔루션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김용주기자 kyj@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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